(추억 편) 군대에서 미술 작업한 이야기 2.

2020. 10. 27. 21:53in the ROKMC

 

 일병 정기휴가를 다녀오고 얼마 안 되어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부대 환경미화를 한다고 해서, 중대 행정관님 지시사항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오래된 중대 건물은 70년대 이전에 지어진 콘크리트 블록 구조 건물로 정말 허름하기 그지없는 건물이었다.

중대에는 PC방이라는 팻말이 걸린 공실이 있었는데 예전에는 PC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자대 배치받았을 당시에는 PC는 없고 칸막이가 달린 독서실 책상 몇 개가 전부인 별다른 활용도가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집합은 자주 했던 걸로 기억한다ㅋㅋㅋ)

 

그런 공간을 나한테 꾸며보라니 뭔가 좀 막막하기도 했지만 아무 재료도 없이 뭘 꾸미겠는가 ㅎㅎ

 

이런 불모지에 와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그림밖에 없지;;

 

 잠깐의 고민 끝에 천장에 벽화를 그것도 '천지창조'를 그리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행정관님은 좋다고 찬성하셨다.

 

그런데 다른 간부나 선임들은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무슨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리냐는 것과, 네가 그걸 그릴 수 있냐는 그런 비아냥도 있었으나

 

행정관님께서 시켰으니 하는 수밖에 ㅎㅎ

 

(참고로 그 당시 상사 남OO 행정관님은 나를 창고에 가둬놓고 전역할 때까지 그림만 그리게 하고 싶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미술을 사랑? 하는 분이셨다.ㅋㅋㅋ)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높은 천장이 문제였다.

 

병사가 1층 건물이었지만 원래 2층으로 된 침상이 있는 구조(본인이 복무할 당시엔 2층 침상은 없었다)라서

천장이 엄청 높았던 것이다;;

 

옆에서 많이 도와준 손해병 ㅎㅎ

 

 

 

사다리도 짧아서 책상 위에 책상을 놓고 그 위에 의자까지...정말 열악했다

 

 

 

 매일매일 자고 일어나면 훈련 나가기 바쁜 부대였지만 훈련이 없을 때는 이런저런 행사와 부대 검열로 정말 바쁜 하루였다.

 

작업은 2~3일이면 끝나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나 ㅎㅎ 작업을 최대한 여유 있게 끌고 끌었지만 일주일 정도 했던 거 같다.

 

눈에 물감도 많이 튀고... 목덜미도 많이 뻐근하고 ㅜㅠ 천장 벽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스타나 성당 벽화에 평생을 바친 미켈란젤로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

그림이 완성되어 갈수록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은 사라졌고, 대단하다는 칭찬으로 바뀌었다.

"

 

완성된 모습.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찍어서 화질이 좋지 않다.

 

 

아래의 사진은 짬밥이 차고 난 후 디카로 다시 찍은 사진이다. 같은 그림이 이렇게 달라 보이다니 ㅎㅎ

 

 

 

다른 그림도 몇 개 더 그렸었다

 

 

 

 

 

VIN The Creation of Adam 6m x 4m Acrylic on concrete ceiling 2005

 

 

 

 이 작업을 끝내고 포상으로 2박 3일 외박을 받았다.

옆에서 도와준 손해병도 함께 ㅎㅎ

군대 작업의 해피엔딩은 언제나 포상휴가 가 아니겠는가? ㅋㅋ

 

 

 9중대에 천장 벽화가 있다는 사실은 금방 대대에 소문이 났고,

 

다른 중대 행정관들은 천장 벽화를 와서 보고 경악을 금치 못 했다 ㅎㅎ

 

그리고는 자기 중대에 그림 좀 그린다는 대원들을 모아서 벽화를 그린다고 정신없었던 기억이 ㅋㅋ

 

심지어 다른 중대 어떤 선임은 나에게 와서 "너 땜에 피곤하게 벽화 그린다"라고 푸념을 하기도 했고

 

머지않아 우리 대대는 중대별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 고흐의 해바라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등

 

해병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명화들로 가득 찬 부대가 되었다...

 

 

 

 

 

 

ps. 이후에 전해 들은 소식으로는 부대정비 사업으로 구 병사는 모두 허물고 새로운 신병사를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의 천장 벽화 역시 구병사와 함께 추억 속으로 영영 사라져 버렸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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